교리(Doctrine)는 신학의 틀을 구성하는 중심 구조물이며, 교회가 믿는 진리를 분명히 밝히는 언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리’라는 말을 들으면 율법적이거나 딱딱한 개념을 떠올리곤 하지만, 사실 교리는 신앙의 내용을 명료하게 정리하여 다음 세대에 전수하고, 이단의 도전 앞에서 복음을 지키며, 교회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생명의 질서입니다. 신학은 계시를 해석하는 학문이고, 교리는 그 해석이 공동체적으로 수용된 체계적 진술입니다.
초기 교회는 교리 없이 신앙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교리란 단지 이론의 집합이 아니라, 무엇을 믿을 것인가를 분별하고 선포하기 위한 신앙적 고백의 언어였습니다.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경 등은 단지 문장 몇 개로 끝나는 문서가 아니라, 교회가 생명처럼 지켜낸 신앙의 울타리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기독교 진리의 본질, 교리의 체계성, 그리고 신앙 고백의 역할을 중심으로 교리가 왜 중요한지, 교리 중심 신학이 교회를 어떻게 세우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진리: 교리의 출발점은 계시된 진실이다
기독교 교리는 단지 철학적 개념이나 역사적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고백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됩니다. 이 진리는 인간이 추론해낸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스스로 드러내신 사실이며, 따라서 절대적이며 변경 불가능한 내용입니다. 진리는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오는 실재이며, 교리는 그 진리를 바르게 담아내기 위한 해석과 정리의 틀입니다.
성경은 진리의 중심이 하나님 자신임을 선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고(요 14:6), 요한복음 17장에서는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따라서 기독교 신학은 진리를 단지 개념이나 정보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인격과 말씀에 근거한 살아 있는 실체로 이해합니다. 교리는 바로 이 진리의 고백이며, 하나님의 성품과 행하신 일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한 구조입니다.
초기 교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계시된 진리를 왜곡하지 않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용어 정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어떤 방식으로 구원을 이루셨는지에 대한 진리의 문제였습니다.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하나님의 본질을 왜곡했고, 이에 대해 니케아 공의회는 “예수는 성부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분”이라는 정통적 교리를 정립하여 진리를 지켜냈습니다.
이처럼 교리는 언제나 진리를 보존하려는 신앙의 수호벽이었습니다. 루이스 벌코프는 교리를 “계시에 대한 교회의 해석이며, 신앙의 고백으로서의 정리”라고 말합니다. 즉, 진리를 바르게 알지 않으면 바르게 믿을 수 없고, 바르게 믿지 않으면 바르게 살 수 없습니다. 교리는 진리를 담아내는 구조이며, 그 구조가 성경적일 때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Pelikan은 교리를 “교회가 진리를 인식하고, 시대적 도전에 맞서 진리를 선포한 역사적 결정체”라고 설명합니다. J.N.D. Kelly 역시 교부들의 교리 형성이 단지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공동체가 삶 속에서 믿고 경험한 진리를 명확하게 규정하려는 과정이었다고 말합니다. 교리는 살아 있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지, 과거의 이론을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는 진리를 담는 그릇이며, 진리는 교리의 생명입니다. 진리 없는 교리는 공허하고, 교리 없는 진리는 혼란을 초래합니다. 교회는 언제나 계시된 진리를 바르게 해석하고 고백하려는 신학적 책임을 져야 하며, 이것이 바로 교리 중심 신학의 출발점입니다.
2. 체계: 교리는 진리를 정리한 구조다
기독교 교리는 단순히 흩어진 신앙의 조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계시된 진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이처럼 체계성(Systematic character)은 교리를 교리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교리는 진리의 수집이 아니라, 진리의 연결과 질서에 대한 신학적 이해이며, 성경 전체에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를 종합적으로 조명하는 도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일관성을 가지며, 다양한 문서들이 다양한 시대와 저자를 통해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분 하나님이 드러낸 계시의 통일성을 유지합니다. 따라서 신학은 이러한 통일성을 인식하고, 각 교리를 전체 진리의 구조 안에서 조화롭게 이해하려는 체계적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이 곧 조직신학의 역할이며, 교리의 체계성은 이러한 노력의 핵심입니다.
초기 교회는 신앙고백을 통해 이 체계성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대 사도신경은 창조주 하나님,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과 교회, 영생으로 이어지는 신학적 구조를 지니며, 이는 성경에 나타난 계시의 흐름을 간결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이후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조 등은 점점 더 체계적이고 정밀한 신앙의 구조로 발전하며, 성경 전체의 교훈을 구조화된 방식으로 표현하려 하였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이 체계화 작업이 보다 철학적인 형태로 전개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는 성경적 진리를 논리적이고 연역적인 방식으로 정리하고자 했으며, 이로 인해 교리는 더욱 조직화된 이론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이 오히려 진리의 단순성과 경건함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고,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적 진리의 본질로 돌아가는 신학의 갱신을 추구했습니다.
개혁주의 전통은 특히 언약신학을 통해 교리의 체계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아브라함, 모세, 다윗,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맺으신 언약의 흐름을 중심으로 성경 전체의 메시지를 이해하며, 이는 구속사의 일관성을 보여주는 가장 성경적인 조직 틀로 평가됩니다. 칼뱅은 이러한 구속사적 시각을 조직신학 안에 체계화했으며, 이후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은 교리 체계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루이스 벌코프는 신학의 조직화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교리가 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신앙은 파편화되고 혼란에 빠지며, 결국 교회는 변질된 진리에 노출된다.” 이는 단순히 체계화를 좋아하자는 말이 아니라, 진리를 왜곡 없이 전달하고 보존하기 위해 반드시 체계가 필요하다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Pelikan 또한 교리의 체계성을 강조하며, “진리는 단편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유기적인 구조를 가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역사 속에서 교회가 점차 진리를 더 분명하게 이해하고 조직하면서, 교리의 구조도 정교해졌음을 분석합니다. Kelly 역시 초기 교부들이 단순히 성경을 반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진리를 설명하고 논박하며, 다양한 오류로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한 논리적 조직을 시도했음을 지적합니다.
결국 교리의 체계성은 단순한 학문적 정리 수준을 넘어서, 진리의 정합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신학적 책임입니다. 교회는 단지 ‘무엇을 믿느냐’뿐만 아니라, ‘어떻게 믿느냐’도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체계적 교리는 믿음의 확실성을 제공하고, 성경 전체의 계시를 온전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도구가 됩니다.
3. 고백: 교리는 공동체의 신앙 선언이다
기독교 교리는 단지 개인의 사상이나 학문적인 정리가 아닙니다. 교리는 본질적으로 신앙 고백이며,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께 응답하는 신앙의 언어입니다. 고백(confessio)이란 말 자체가 ‘함께 말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곧 교리가 공동체적으로 공유되고, 공적으로 선포되며, 시대와 세상 앞에서 분명히 선언되는 신앙의 내용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초대교회는 박해와 이단의 도전 속에서 “예수는 주이시다”(κύριος Ἰησοῦς)의 고백을 생명 걸고 외쳤습니다. 이 단순한 고백은 로마 황제를 주로 섬겨야 한다는 제국의 압력에 맞서, 교회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왕으로 인정하는 신앙의 선언이었습니다. 이처럼 교리는 고백이었고, 고백은 교리의 가장 생생한 실체였습니다. 초기 신조들—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모두는 공동체가 동일한 믿음을 고백하며 하나 됨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후 종교개혁 시대에 들어서면서 신앙고백은 더욱 구체화됩니다. 루터는 “나는 여기 서 있다. 나는 달리 할 수 없다”는 고백으로 자신의 신앙을 공적으로 선언했고, 칼뱅은 『기독교강요』를 통해 개혁교회의 신앙 체계를 정리하며 시대의 도전에 맞섰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같은 문서들은 단순히 교리를 설명한 것이 아니라, 시대를 향한 교회의 정체성과 의지를 담은 신학적 선언이었습니다.
Pelikan은 교리의 고백성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교리는 기독교 공동체가 시대와 장소 속에서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믿음을 분명히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는 특히, 교리가 단지 내부 문서가 아니라, 외부 세상과의 대화에서 교회가 자신을 드러내는 언어라고 강조합니다. Kelly 역시 교부들이 교리를 정립할 때, 그것이 단지 신자들만의 문서가 아니라, 세상의 철학과 종교에 맞서 진리를 선포하기 위한 외적 언어였다고 설명합니다.
이 고백으로서의 교리에는 공동체성, 선포성, 책임성이라는 세 가지 특징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째, 교리는 공동체적입니다. 단지 신학자 한 사람의 사상이 아니라, 교회 전체가 함께 고백하고 수용한 진리입니다. 둘째, 교리는 선포적입니다. 이는 단지 학문적 분석이 아니라, 설교와 교육, 찬양과 예배를 통해 살아 있는 방식으로 전달되는 메시지입니다. 셋째, 교리는 책임적입니다. 잘못된 고백은 곧 이단으로 이어지며, 건강한 고백은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지켜냅니다.
오늘날 교회가 겪고 있는 혼란의 이면에는 고백의 실종이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교리를 ‘옵션’으로 여기고, 고백 없이 문화나 감정에 휘둘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교회는 반드시 고백하는 교회이며, 참된 신자는 반드시 바르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리가 단지 머리의 이해를 넘어서, 삶과 신앙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교리는 기독교 진리의 고백이며, 성경에 대한 공동체적 해석이자, 신자의 삶을 안내하는 신앙의 지도입니다. 진리를 담고, 체계를 이루며, 고백으로 드러나는 교리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도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지키는 살아 있는 힘입니다.
교리를 가볍게 여기는 시대일수록 교회는 뿌리를 잃고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른 교리를 견고히 붙든 교회는 어떤 시대의 도전 앞에서도 굳건히 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리를 배우는 일은 단지 지식 습득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고 공동체를 세우며 하나님의 진리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영적 책임입니다.
출처:
1) 루이스 벌코프, 『기독교 교리사』
2) 조병하, 『세계역사 속의 그리스도교 역사』
3) J.N.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4) Jaroslav Pelikan, The Christian Tradition, Vol.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