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급진신학과 후기현대 신학 (급진신학, 후기구조주의, 전망과 과제)

by 차곡지기 2025. 6. 22.

급진신학과 후기현대 신학 (급진신학, 후기구조주의, 전망과 과제)

 

20세기 후반 이후, 신학은 전통적 신념과 제도, 언어가 흔들리는 '후기현대'의 시대정신 속에서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과학기술의 급진적 발전, 다문화주의의 확대, 포스트식민주의의 대두, 성소수자와 젠더 정체성 문제, 환경 위기 등은 기존의 조직신학이나 교의신학이 포착해내기 어려운 문제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등장한 급진신학후기현대 신학은, 신학이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고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인간 이해와 사회 현실 속에서 복음을 어떻게 새롭게 사유하고 증언할 것인가에 대한 시도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본 강의에서는 급진신학의 핵심 흐름과 해체주의적 신학의 경향, 후기현대 신학이 제기하는 새로운 가능성과 도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급진신학의 기원과 탈구조적 도전

급진신학(radical theology)은 1960년대 이후 북미와 유럽의 자유주의 신학 전통을 배경으로, 전통 기독교 신론 및 계시 개념 자체에 대한 근본적 해체와 재해석을 시도한 흐름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죽음'(Death of God) 신학은 본회퍼의 "종교 없는 그리스도교" 사상을 급진적으로 수용하며, 신이 인간 존재 속에서만 현존할 수 있다는 비신화적 존재론을 강조합니다.

토마스 알타이저(Thomas J. J. Altizer)와 윌리엄 해밀턴(William Hamilton)은 하나님 개념을 형이상학적 실체로 보지 않고, 존재론적 해체의 상징으로 간주하면서 전통 교의학의 붕괴를 선언했습니다.

급진신학은 신학을 하나의 해방적 담론으로 재구성하고자 했으며, 후기마르크스주의, 프로이트적 심리학, 해체주의 언어철학 등과 결합하여 교회 중심의 제도 신학을 탈피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사조는 전통적 신앙고백보다는 인간 실존의 경계 상황에서 복음의 언어를 재정의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두었습니다. 본회퍼의 후기 신학이 급진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세속 안의 하나님'**은 초월적 개입자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자기를 비우신 채 세계 안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급진신학은 '형이상학 이후의 신학'(post-metaphysical theology)이라는 틀에서, 신학이 철학 및 문화비평과 상호 교차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 중심에는 '믿음의 해체'가 아니라 **'신앙의 실존화'**라는 목적이 있으며, 이는 제도 종교의 해체를 넘어 새로운 공동체적 신앙 형성의 실험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급진신학은 단지 전통의 파괴자가 아니라, 신학의 지평을 열어젖힌 새로운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2. 해체주의와 후기구조주의의 신학적 수용

급진신학의 두 번째 주요 흐름은 후기구조주의해체주의 사상의 신학적 수용입니다. 이 흐름은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deconstruction) 철학과 미셸 푸코의 권력-지식 담론 이론의 영향을 깊이 받습니다. 기존의 조직신학이 전제했던 확고한 의미 체계, 이원론적 구분, 정체화된 신 개념은 해체주의적 접근에 의해 문제시됩니다.

신학자들은 데리다의 개념—특히 **'차연(différance)'**과 텍스트 해체 방식—을 통해 성경과 신학적 담론이 고정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신학을 닫힌 체계로 보지 않고, 항상 새롭게 재해석되어야 하는 열린 텍스트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1980~1990년대 북미 신학계에서 **'포스트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주목받게 됩니다. 해체주의는 전통 신학이 갖는 언어적, 계시적 고정성을 비판하며, 신학 언어가 현실을 단순히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권력을 생산하고 사회적 경계를 형성한다고 주장합니다. 제임스 K. A. 스미스는 이러한 사상을 받아들여 기독교 전통 안에서 해체적 사유를 전개하려 했으며, 존 D. 캐펄토(John D. Caputo)는 신학은 끊임없이 그 기초를 흔들며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에게서 신은 존재적 실체라기보다 **'사건(event)'**으로 이해되며, 이러한 하나님은 규범화되기보다 새로운 윤리적 열림을 창조하는 기능을 가집니다.

해체주의 신학은 기존의 초월적 하나님, 교리, 윤리 체계가 가진 보편주의적 폭력을 지적하며, 그 안에서 억압받는 타자의 음성을 들으려 합니다. 따라서 이 신학은 여성주의 신학, 탈식민주의 신학, 퀴어 신학과도 깊은 연대를 형성합니다. 또한 교회를 전통과 교리의 수호자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실천하는 윤리적 공동체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를 포함합니다. 신학적 권위는 더 이상 특정 교단이나 고백문에만 머무르지 않고, 해석 공동체 내에서 형성되는 관계성과 담론적 상호작용에 기반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접근은 분명 개혁주의 전통과 충돌할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계시와 언약을 중심으로 진리의 객관성과 언어의 명료성을 강조하지만, 해체주의 신학은 이와 정반대로 언어의 불확정성계시의 열림을 전제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신학을 닫힌 진술로 보지 않고, 새로운 실천적 신앙의 지평을 여는 동력으로 본다는 점에서 현대 신학의 전환을 상징합니다.

3. 후기현대 신학의 전망과 과제

후기현대 신학은 급진신학의 해체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단순한 부정이나 해체에 머물지 않고, 미래적 전망공공신학적 응답을 지향하려는 흐름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후기구조주의, 문화비평, 젠더 신학, 포스트콜로니얼 신학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는 이 신학들은 모두 "해체 이후의 재구성"이라는 공통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는 곧 절대 진리에 대한 불신과 상대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기존 교리적 구조나 권력적 언어가 억압해온 다성성(polyphony)과 변두리의 목소리를 정당하게 회복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학은 동시에 교회의 공적 책임과 윤리적 실천을 중심 과제로 삼습니다. 후기현대적 상황에서 교회는 단지 하나의 종교기관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정의, 평화, 생태, 인권 등의 문제에 대해 응답해야 하는 공공의 주체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전통적 교회론과 신학 방법론에 대한 근본적인 재사유를 요청하며, 선교의 목적도 단순한 확장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윤리'**로 이동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후기현대 신학은 신학과 정치, 신앙과 문화를 명확히 구분 짓기보다 상호작용 속에서 이해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존 카푸토(John D. Caputo)는 해체 이후의 신학을 "하나님의 약함의 신학"이라 부르며, 전능하신 하나님 대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하나님의 개념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후기현대 신학이 하나님의 개념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지배 논리로 전유되어온 방식을 비판하고, 오히려 더 급진적인 사랑의 하나님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후기현대 신학은 하나님, 교회, 공동체, 구원 등 신학의 핵심 개념들을 새롭게 구성하려는 **'신학적 실험실'**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개혁주의적 관점에서는 경계해야 할 부분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 계시와 진리의 선포를 상대화할 경우, 신학은 더 이상 복음의 외침이 아니라 시대 정신에 편승한 사상적 흐름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종말론적 시각을 통해 이 시대를 해석하며, 진리와 은혜의 개념을 신학적 중심으로 붙잡고자 합니다. 이러한 전통은 후기현대 신학이 추구하는 '대화와 수용' 속에서도 여전히 선포와 증언의 자리,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의 확실성이라는 핵심을 지켜나가야 함을 역설합니다.

결국 후기현대 신학은 비판적이며 창의적인 신학의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그 전망은 신학이 자기 토대를 상실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시대의 언어로 복음을 해석하고 전달할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와 신학은 후기현대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진리의 빛으로, 공공의 희망으로, 예언자의 음성으로 존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해체된 뒤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급진신학과 후기현대 신학은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교의와 신학 체계를 도전하고 재구성하려는 신학적 실험의 흐름을 대표합니다. 이들은 단지 전통의 해체를 위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현대 세계의 윤리적, 정치적,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복음이 어떻게 새롭게 이해되고 소통되어야 하는지를 질문해 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이 시대에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신학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이 놓여 있었습니다.

급진신학은 교회와 신학이 갖고 있는 기득권적 구조, 배타성, 억압적 언어에 대해 급진적으로 저항하면서, 예언자적 정체성을 회복하려 했습니다. 반면 후기현대 신학은 절대적 진리나 객관적 계시에 대한 인식론적 회의를 통해, 신학 자체가 새로운 언어와 구조로 재구성되어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급진성과 해체성의 이름으로 폄하하기보다, 오늘날의 신학과 교회가 시대의 질문에 정직하게 응답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하는 중요한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동시에 复음의 핵심을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가라는 비판적 평가도 피할 수 없습니다. 진리는 단지 대화와 상호작용 속에서만 드러나는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선포되어야 한다는 개혁주의의 관점은 이러한 후기신학적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를 제공합니다. 해체 이후의 신학이 단지 문화비평의 한 형태로 머문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를 위한 신학, 구원을 위한 신학이 될 수 없습니다.

결국 오늘날의 신학은 비판과 해체, 수용과 재구성, 선포와 대화라는 긴장 속에서 균형을 모색해야 합니다. 급진신학과 후기현대 신학은 전통의 껍질을 벗기고 복음의 본질을 되묻는 역할을 감당해 왔으며, 이제 교회와 신학은 그 도전을 넘어설 수 있는 복음의 언어, 말씀의 신선한 해석, 시대를 향한 예언자적 비전을 다시 선포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