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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불트만의 신학 (하이데거, 실존신학, 비신화화)

by 차곡지기 2025. 6. 18.

루돌프 불트만의 신학 (하이데거, 실존신학, 비신화화)

 

20세기 초, 신학은 해체와 재구성의 기로에 서 있었으며, 계몽주의 이후 전통적 기독교 신앙의 근거였던 성경과 교리는 과학적 세계관과 역사비평학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자연과학의 발전, 실증주의, 그리고 역사비판적 방법론은 초자연과 기적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켰고, 이는 신학이 무엇을 말할 수 있으며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은 ‘비신화화(demythologisierung)’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신약성서의 신화를 실존적 언어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전개하였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과거의 신화적 언어와 세계관에 갇혀 있다면 현대인에게 의미를 줄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 신앙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신화적 요소를 제거하고 실존적 메시지를 드러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불트만은 단순한 해석의 기교를 넘어 신학 전체의 존재론적 방향을 바꾸려는 시도를 감행하였습니다. 그는 신약성서의 복음이 단지 초월적 진술이 아니라 인간 실존에 대한 요청임을 강조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마르틴 하이데거의 실존 철학을 주요 도구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학을 철학에 예속시키지 않고, 오히려 신앙 고백적 차원에서 실존적 해석을 시도함으로써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였습니다.

이 강의에서는 불트만의 비신화화 개념과 실존적 해석학, 그리고 그 철학적 배경 및 신학사적 의의에 대해 논의하고자 합니다.

1. 비신화화(demythologisierung): 신학의 현대화 시도

루돌프 불트만 신학의 핵심 개념은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입니다. 이는 성경 속 초자연적이고 신화적인 요소들—예를 들어 천사, 귀신, 기적, 부활 등—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현대인의 세계관 안에서 그 의미를 재해석하자는 제안입니다. 불트만은 신화적 요소들을 단순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으로 ‘번역’함으로써 복음이 현대인에게 의미 있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개념의 출발점은 당시 신학이 처한 위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 이성에 대한 낙관을 바탕으로 성경을 도덕적 메시지로 환원하였고, 반면 정통주의는 성경의 모든 기록을 문자적으로 수용하려 하였습니다. 불트만은 양쪽 모두 현대인의 실존적 상황을 놓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특히 칸트의 초월론적 인식론 하이데거의 실존 철학에 근거하여, 신학은 단순한 사실 보고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물음에 응답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그는 성경의 신화적 구조는 고대인의 세계관에 의한 표현일 뿐이며, 그 이면에 담긴 ‘실존적 진실’을 추출하는 것이 신학의 과제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부활 사건은 불트만에게 단지 육체의 되살아남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절망과 죄의 지배로부터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해방되는 실존적 사건으로 해석됩니다. 즉, 부활은 객관적 역사 사건이기보다는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역사적 사실 여부를 중시하는 보수주의 신학과는 분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럼에도 불트만은 신화적 언어의 파괴가 아니라, 신화의 해석적 구원을 통해 복음이 오늘의 인간에게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불트만의 이론은 1941년 “신약의 비신화화”라는 논문에서 명확하게 정리되었고, 이후 막대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칼 바르트는 불트만의 방법이 복음의 초월성을 상실하게 만들 수 있다고 비판하였고, 반대로 하인리히 오토(H. Ott), 에른스트 푹스(E. Fuchs) 등은 이 방법을 더욱 발전시켜 해석학적 신학의 전환점으로 삼았습니다.

비신화화는 단지 신학적 기술이 아니라, 현대인과 복음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도가 신앙의 내용 자체를 희생시켰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불트만은 초자연적 사건들을 배제함으로써 기독교 복음의 역사성과 초월성, 신적 개입을 약화시키는 경향을 보였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화 없는 기독교”라는 대안을 제시하려 한 최초의 시도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되며, 현대 신학의 길을 연 인물임은 분명합니다.

2. 실존적 해석학: 하이데거 철학과의 만남

불트만 신학의 또 다른 중요한 전환점은 하이데거 철학의 영향 아래 형성된 실존적 해석학입니다. 하이데거의 대표작 『존재와 시간』(1927)은 불트만에게 인간 존재에 대한 신학적 접근 방식을 바꾸는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습니다. 불트만은 신약성서를 단순한 종교 문헌이나 역사적 기록으로 보지 않고, 존재를 묻는 실존적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로 해석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이데거의 사상에 따르면 인간 존재(Dasein)는 단순히 세상에 있는 ‘사물’이 아니라, 세계와 시간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인간 존재는 필연적으로 불안과 죄의식, 단절을 경험하며, 자신을 초월하는 ‘어떤 것’에 대한 근본적 갈망을 품게 됩니다. 불트만은 바로 이 점에서 신학이 들어설 여지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하이데거의 실존 분석을 성경의 인간 이해와 연결시키며, 복음은 인간이 이 실존적 위기의 상황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없고, 오직 외부로부터의 초월적 말씀과 개입을 통해서만 진정한 존재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불트만은 성경 본문을 실존적 질문과 해답의 구조로 읽습니다. 예수의 비유, 사도 바울의 편지, 요한복음의 선언 등은 단순한 교훈이나 교리가 아니라, 현대 인간의 실존적 절망과 가능성을 드러내는 실존적 언어입니다. 그는 이 텍스트들을 오늘의 청자에게 해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그가 비신화화와 함께 제시한 ‘실존적 해석(existential interpretation)’입니다.

불트만에게 해석은 단순한 의미 전달이 아니라, 존재 전환의 사건입니다. 그는 설교가 곧 해석이자 계시라고 보았으며, 말씀이 선포될 때마다 청자는 그 말씀 안에서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설교는 단지 성경을 설명하는 행위가 아니라, 실존적 결단을 요청하는 사건입니다. 설교자는 청중을 신화의 세계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실존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게 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존적 해석학은 여러 비판에 직면합니다. 무엇보다 성경 본문의 역사성과 객관성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입니다. 불트만은 예수의 육체적 부활이나 역사적 기적을 ‘실존적 의미로만’ 수용함으로써, 복음의 역사적 뿌리를 제거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의 제자 에른스트 푹스와 게르하르트 에벨링은 이 방법론을 더욱 발전시켜 해석학적 신학(Hermeneutical Theology)이라는 흐름을 만들었으나, 점차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회의가 더해지며 정통 신학자들과의 거리가 벌어졌습니다.

불트만의 실존적 해석학은 신앙의 인식론을 새롭게 재정의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는 기독교 복음을 단지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듣는 자의 삶을 뚫고 들어오는 ‘현존의 말씀’으로 다시 제시하려 하였습니다. 신학이 철학과 만났을 때, 계시는 단순한 정보를 넘어서 인간 존재 전체를 변혁시키는 부름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3.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 신앙과 역사 비판의 긴장

불트만 신학의 가장 논쟁적인 지점은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 사이의 긴장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그는 근대 역사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전통적인 역사주의 접근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였습니다. 신약성서를 있는 그대로 ‘역사적 문헌’으로 접근하는 역사비평학의 방법론을 수용하되, 궁극적으로는 복음의 진리를 역사적 사실이 아닌 ‘선포된 말씀’인 케리그마(Kerygma)로 간주하였습니다.

불트만에 따르면, 인간은 역사적 예수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봅니다. 예수의 생애나 기적, 죽음과 부활의 역사성은 문헌적, 비판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설령 부분적으로 접근하더라도 그것이 신앙의 핵심은 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예수의 인격이나 행적에 집중하는 대신, 초기 교회의 케리그마, 즉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의 내용을 중심으로 복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복음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신앙의 사건”이라 말하며, 신학의 중심축을 객관적 역사에서 주관적 선포로 이동시켰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알베르츠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의 “역사적 예수 탐구의 불가능성”에 대한 견해와 일정 부분 공명합니다. 그러나 불트만은 여기서 더 나아가, 역사적 자료와는 독립적으로 복음의 실존적 메시지를 해석할 수 있다는 신학적 확신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역사적 예수’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복음에 집중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에 따라 불트만은 성경 비평학을 사용하면서도, 그 목적을 단순히 문헌 해석이나 역사 재구성에 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신앙 공동체의 고백과 선포가 어떻게 현재적 실존에 의미를 가지는가에 더 깊은 관심을 두었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많은 신학자에게 충격을 주었고, 동시에 ‘신학은 신앙의 내용을 다루는 것인가, 역사적 사실을 복원하는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습니다.

불트만의 제자인 에른스트 케제만(Ernst Käsemann)은 그의 이분법에 도전하며, ‘새 역사적 예수 탐구 운동’을 제안하였습니다. 케제만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를 포기할 수 없다고 보았고, 초기 케리그마와 예수의 생애 사이에 긴밀한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논의는 이후 유럽 신학계 전반에 걸쳐 ‘신앙과 역사’의 관계에 대한 심화된 논쟁을 촉발하였습니다.

불트만의 역사관은 또한 종말론과도 연결됩니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 안에 있는 유대적 종말론을 현대적 언어로 ‘실존적 결단의 요청’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물리적 시간의 끝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 안에서 지금 여기에서 체험되는 종말적 사건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종말은 시간의 사건이 아닌, 신앙의 사건이며, 복음을 듣는 자마다 바로 그 순간 종말에 서 있다고 본 것입니다.

불트만의 이 같은 관점은 보수주의 진영에서는 복음의 실체를 해체한 것으로 비판받았지만, 진보적 진영에서는 신앙과 이성을 동시에 고려한 신학적 용기로 평가받았습니다. 역사적 예수의 부재와 복음의 현재성 사이에서 그는 신학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

 

루돌프 불트만은 20세기 신학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전통적 신학 방법론을 해체하고, 신약성서를 실존적 언어로 재해석함으로써 신학의 방향을 새롭게 틀었습니다. 그의 비신화화 프로그램, 실존적 해석, 그리고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구분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시대의 질문에 응답하려는 급진적 시도였습니다.

불트만의 신학은 “성경의 진리를 어떻게 현대인에게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성경을 단순한 고대 문서로 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향해 선포되는 살아있는 메시지로 이해하려는 접근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의 본질은 그 역사성이나 문헌적 외형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결단을 촉구하는 현재의 말씀’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하였습니다.

물론 그의 신학은 많은 비판에 직면하였습니다. 복음의 초자연적 요소를 지나치게 제거하고, 실존주의 철학에 과도하게 의존했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논란이 되는 지점입니다. 또한, 역사와 신앙, 객관성과 주관성, 계시와 해석 사이의 긴장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트만이 열어준 문제의식과 방법론은 이후 에른스트 케제만, 한스 프라이, 위르겐 몰트만,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등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며 신학적 지형을 확장시키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결국 불트만은 단지 하나의 해석 모델을 제시한 인물이 아니라, 신학이 시대와 대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신학의 중심에 세운 존재입니다. 그는 인간이 근대성 속에서 실존적 불안과 불확실성을 경험하는 시대에, 복음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신자는 그 말씀에 결단으로 응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점에서 그의 신학은 여전히 도전적이며, 교회와 신학이 복음을 현재화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불트만 이후의 신학은 그의 오류를 비판하면서도, 그가 남긴 질문과 방식 위에서 또 다른 신학의 길을 개척해 왔습니다.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복음의 객관적 실재와 역사적 사실성을 회복하는 노력이 반드시 병행되어야겠지만, 신앙이 단지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현재적 결단이라는 통찰은 분명 우리 시대에도 유효합니다. 결국, 불트만의 유산은 복음이 단지 보존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람들에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출처:

1)Rudolf Bultmann, Existence and Faith

2) Rudolf Bultmann, History and Eschatology

3) Rudolf Bultmann, Jesus and the Word

4) Rudolf Bultmann, “The Task of Theology Today” 

5) Rudolf Bultmann, New Testament and Mythology 

6) Rudolf Bultmann, Jesus Christ and Mythology, 

7) Ernst Käsemann, “The Problem of the Historical Jesus”

8) Jürgen Moltmann, Theology of Hope

9) Peter Stuhlmacher, Historical Criticism and Theological Interpretation of Scripture

10) 김진혁, 서평: 「불트만: 역사와 종말론」

11) 불트만의 신학 방법론 ―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논문)

12) 『후기 자유주의 신학』 (연세대 강의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