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중엽,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벌어진 종교적 격변 속에서 개혁주의 신학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중심에는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단지 신학 체계를 정리한 문헌이 아니라, 개혁주의 정통 신학의 정수를 담아내고, 이후 수백 년 동안 장로교회와 개혁교회가 신앙과 교회의 질서를 유지해 나가는 데에 핵심 기준이 되었습니다.
개혁자들의 사상은 종교개혁 이후 각 지역의 신학적 특성과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개혁신학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보편적으로 수용 가능한 표준 신학이 필요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러한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으며, 영국 국교회 개혁의 실패, 장로교 전통의 확립, 성경 중심의 교리 체계 구축이라는 흐름 안에서 역사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작성된 역사적 배경, 그 신학적 핵심과 구조, 그리고 장로교 전통 안에서 이루어진 정통 교리의 제도화 과정을 살펴보며, 개혁주의 정통화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1. 웨스트민스터 총회와 신앙고백서의 탄생
(연관 키워드: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1643년부터 1653년까지 10년 가까이 계속된 장기 회의로, 당시 영국 의회가 조직한 공식 신학회의였습니다. 이 회의의 목적은 단지 교회 개혁에 그치지 않고, 영국 국교회를 개혁하고, 스코틀랜드와 통일된 신앙고백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국왕 찰스 1세와 의회 간의 긴장이 극에 달해 있었고, 이러한 정치적 혼란은 교회의 제도와 교리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비를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총회는 약 120명의 신학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은 대부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 신학자, 청교도 지도자, 성경 주석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공동으로 성경에 기초한 교리 체계를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통일된 교회와 예배 질서를 구성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그 결과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이었습니다.
이 문서들은 단순한 신조가 아니라, 구원론, 교회론, 성례론, 윤리, 종말론 등 전 영역에 걸친 정교한 신학 체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신앙고백서는 중세의 스콜라 신학적 전통과, 종교개혁 이후의 성경 중심주의를 균형 있게 종합하면서도, 정통 교리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Chad Van Dixhoorn에 따르면, 이 문서는 “신학적 정밀함과 영적 실제성을 결합한 유례없는 신앙 문서”이며, 이는 개혁주의 신학이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교회 공동체의 생활과 예배, 성도의 성화에까지 영향을 미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2. 교리의 표준화와 정통화의 진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갖는 가장 핵심적인 기능은 정통 신학의 기준으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종교개혁 이후 각 지역에서 수립된 여러 고백 문서들이 존재했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포괄적이고 정밀한 개혁신학의 표현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는 교리의 분산과 변형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교회 전체가 신앙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교리의 표준화 작업이었으며, 이는 곧 개혁주의 정통화의 핵심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신앙고백서를 통한 교리의 표준화는 단지 교회의 내적 질서 유지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이단과 혼합주의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는 울타리 역할을 하였습니다. 특히 17세기 이후 유럽 대륙과 영국에 불어온 이신론, 계몽주의, 자유주의 신학의 물결은 신앙고백서와 같은 명확한 교리 체계 없이는 개혁주의 교회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Robert Letham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성경적 진리의 교의적 요약”이자 “신앙 공동체를 위한 신학적 안전망”으로 기능했다고 분석합니다. 그는 특히 이 문서가 교회의 교육, 교리 교육, 성례의 시행, 교회의 권징까지도 포괄적으로 다룸으로써, 개혁교회의 전인적 구조를 성경적으로 조직했다고 평가합니다.
정통화란 단순한 '보수적 고집'이 아닙니다. 그것은 변질과 이탈 없이 복음의 진리를 명확하게 계승하고 보존하려는 신학적 노력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바로 이러한 노력의 결정체로, 개혁주의 정체성을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3. 장로교 전통 안에서의 수용과 유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곧 스코틀랜드 교회의 공식 신조로 채택되었으며, 장로교회의 역사 속에서 중심 교리 문서로 자리잡았습니다. 이후 미국, 캐나다, 한국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장로교회들이 이 신앙고백서를 자신의 교단 헌법에 포함시키면서, 글로벌 개혁신학의 정체성과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장로교 전통은 신앙고백서를 단지 교리 교육의 도구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실제 교회의 치리, 예배, 성례, 권징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개혁주의 신학이 성경적 원칙 위에 철저히 기초하고 있으며, 조직과 제도 속에서도 성경의 가르침이 그대로 살아 숨 쉬도록 하려는 실천적 지향의 반영입니다.
이 신앙고백서는 또한 장로교 신학 교육의 표준 자료가 되어, 수많은 목회자와 교사들이 이를 바탕으로 신학교육을 받았습니다. 한국 장로교회에서도 각 교단은 이 신앙고백서를 교리적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장로·집사 임직 시 이를 신앙의 고백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처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특정 지역이나 시대를 초월하여 개혁주의 전통 전체의 유산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이 문서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현대 신학이 끊임없이 상대화되고, 진리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는 시대 속에서, 정리된 교리의 필요성과 유익은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신앙고백서는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교회를 보호하고 세우는 살아 있는 신학의 도구로서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단지 17세기의 유산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도 살아 있는 신앙의 기준이며, 개혁주의 정체성을 지키는 교리적 기둥입니다. 이 문서는 성경에 대한 신뢰, 교리의 명확성, 교회의 질서를 통합적으로 반영한 결정체로, 정통 개혁신학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표준이 되었습니다.
신앙고백서를 통해 교회는 세속화의 흐름 속에서도 본질을 유지할 수 있으며, 혼란한 신학의 시대에도 복음 중심의 정체성을 붙들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읽고 이해하며 지키는 일은, 단순한 전통 보존을 넘어 복음의 진리를 따라 사는 공동체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통 개혁신학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출처:
1) 루이스 벌코프, 『기독교 교리사』
2) 조병하, 『세계역사 속의 그리스도교 역사』
3) Chad Van Dixhoorn, Confessing the Faith: A Reader’s Guide to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4) Robert Letham, The Westminster Assembly: Reading Its Theology in Historical Con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