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학은 단지 학문으로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셨다는 사실에 대한 인간의 경청과 응답이며, 교회 공동체가 시대 속에서 자신이 믿는 바를 분별하고 선포해온 역사입니다. ‘신학’이라는 단어는 ‘Theologia’—곧 ‘하나님에 대한 말’에서 왔지만, 기독교 전통 안에서 신학은 말 이상의 실존적 응답이었습니다. 신학은 말씀이신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대화이며, 교회가 그의 음성을 따라가는 과정입니다.
초기 교회는 신학을 철학적 체계로 정립하기보다, 복음을 지키기 위한 고백으로 출발했습니다. 신학은 늘 실천적이며, 교회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신학 위에 세워져 있었고, 신학은 언제나 교회를 섬기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개혁주의 전통은 신학이 곧 경건의 학문이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습니다.
이 강의에서는 기독교 신학을 구성하는 세 축—계시, 신앙, 교리—를 통해 이 신학의 뿌리와 목적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계시: 신학의 시작
기독교 신학의 시작은 언제나 하나님의 계시로부터입니다. 인간이 신을 탐구하여 얻는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셨기 때문에 가능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인간에게 알려주시기로 선택하셨고, 그 방식은 창조 질서, 양심, 역사 속 사건,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한 말씀,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계시는 크게 자연계시와 특별계시로 나뉩니다. 자연계시는 하늘의 질서와 인간의 본성에 새겨진 창조주의 흔적이며, 이는 하나님을 알되 믿음에 이르게 하지는 못합니다.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과 성품, 뜻을 더 명확하고 인격적으로 드러내며, 성경이라는 기록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성경은 단지 계시의 일부가 아니라, 계시의 기록 그 자체로 이해됩니다. 개혁주의 전통은 성경을 하나님의 무오하고 충분한 말씀으로 고백하며, 신학은 이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체계화하는 일로 이해합니다. 여기서 신학은 철학이 아니라 ‘해석학’이며 ‘봉사’입니다. 교회가 바르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가르치고 살도록 섬기는 학문입니다.
J.N.D. Kelly는 초기 교회가 성경을 어떻게 ‘권위 있는 계시의 기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며, 계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정경 형성의 핵심 동기였음을 지적합니다. Pelikan 또한 기독교 교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계시에 대한 신뢰가 선행되었음을 강조하며, 계시는 단지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전달임을 설명합니다.
계시는 하나님 편에서 시작된 대화이며, 신학은 그 대화에 참여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인간의 신앙: 신학의 동기
기독교 신학은 인간의 일방적 탐구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계시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며 그 중심에는 신앙이 있습니다. 신앙은 단순한 감정적 확신이나 도덕적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인격적 행위입니다. 루터는 “신앙은 살아 있고 능동적인 신뢰다”라고 했고, 칼뱅은 “신앙은 그리스도를 옷 입는 것”이라 표현했습니다.신앙은 또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입니다. 니케아 신조나 사도신경이 대표하듯, 교회는 함께 믿고 함께 고백합니다. 이러한 신앙의 공동체성은 신학의 실천적 성격과도 연결됩니다. 신학은 ‘앎’이 아니라 ‘믿음의 앎’이며, 교회의 삶을 위한 해석학입니다.신앙은 신학의 기초이며 열쇠입니다. 아무리 정교한 체계라 하더라도 신앙 없는 신학은 공허한 철학일 뿐이며, 성경의 하나님을 만나게 하지는 못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처럼 신앙과 신학의 유기적 연결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Pelikan은 신앙이 “교리를 낳는 자궁”이라고 표현하며, 신앙 없이는 정통 교리도 존재하지 못한다고 강조했습니다. J.N.D. Kelly 역시 “모든 위대한 교리 형성은, 교회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명확히 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고 말합니다.
초기 교회는 박해와 혼란 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신앙이 단지 문화나 관습이 아닌, 삶의 본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 고백이 하나둘씩 공동체 안에 체계적으로 정리되면서 신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신앙은 언제나 고백을 동반하며, 그 고백이 신학으로 발전합니다.
3. 교회의 교리: 신학의 구조
신앙은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 안에서 고백되고 정리되며 교리라는 형태로 축적됩니다. 기독교 신학은 이 교리들의 총체이며, 성경에 대한 해석과 신앙 고백의 구조화된 산물입니다. 초기 교회는 다양한 이단들의 도전 속에서 자신들이 믿는 바를 분명하게 정의할 필요에 직면했고, 그 결과 삼위일체, 기독론, 구원론 등이 정립되었습니다.
교리는 단지 교회 지도자들의 철학이 아니라, 공동체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문서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모두 신앙의 삶에서 길어 올려진 신학의 결정체입니다.
벌코프는 신학의 목적을 “계시에 대한 교회의 해석과 고백을 질서 있게 정리하는 것”이라 했으며, Pelikan은 “교리는 공동체가 시대마다 신실하게 계시를 이해하고자 했던 결과물”이라 분석했습니다. Kelly는 초대 교리들이 단순한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성경과 공동체 삶에 뿌리내린 신앙의 방어와 보존 수단이었다고 보았습니다.
교리는 신학의 형태를 만들고, 신학은 교리 안에서 구체화됩니다. 교리는 교회의 경계와 정체성을 세우며,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는 도구가 됩니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하나님을 바르게 고백하며,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교리를 배워야 합니다.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그 말씀을 신앙으로 받고, 교리로 고백하는 교회의 역사입니다. 신학은 지적 작업이지만, 동시에 경건의 훈련이며, 신앙 고백의 실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 앞에 서는 자로서, 신앙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교리로 교회를 세우는 공동체로서 신학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출처:
1) 루이스 벌코프, 『기독교 교리사』
2) 조병하, 『세계역사 속의 그리스도교 역사』
3) J.N.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4) Jaroslav Pelikan, The Christian Tradition, Vol.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