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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복음주의 운동(신복음주의, 로잔운동, 개혁주의 수용)

by 차곡지기 2025. 6. 17.

 

 

20세기 복음주의 운동(신복음주의, 로잔운동, 개혁주의 수용)

 

20세기 초는 교회사적으로 거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이 전통적 신앙을 도전하고 있었고, 근본주의는 이에 맞서면서도 문화와 단절된 반작용적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양극단 속에서, 복음주의는 성경 중심성, 십자가의 복음, 개인적 회심, 선교와 사회책임의 통합을 지향하는 중도 노선을 선택하며 등장하게 됩니다.

복음주의 운동은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에 대항하며 정통 신앙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와의 대화, 사회참여, 신학적 개방성을 동시에 모색하였습니다. 이러한 균형적이고 통합적인 시도는 바로 신복음주의(New Evangelicalism)의 이름 아래 태동하게 되며, 이후 로잔운동(Lausanne Movement)과 같은 세계 복음주의의 연합 흐름으로 확장됩니다.

이 강의에서는 ① 신복음주의의 등장과 특징, ② 로잔운동의 역사와 신학적 의미, ③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의 상호작용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20세기 복음주의 운동의 구조와 계승 과제를 조망하고자 합니다.

1. 신복음주의의 재정립 시도

20세기 중반 미국 복음주의 진영은 결정적인 신학적 전환을 경험합니다. 근본주의(Fundamentalism)는 자유주의에 대한 반발로 성경의 무오성과 기적에 대한 신앙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동시에 문화, 학문, 사회와의 대화에는 소극적이거나 폐쇄적인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신복음주의(New Evangelicalism)입니다. 이 운동은 ‘진리 수호’와 ‘문화 참여’를 동시에 추구하며 전통적 복음주의를 새로운 방식으로 정립하고자 했습니다.

신복음주의는 1940~50년대에 등장하며 미국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흐름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 핵심 주창자 중 한 사람인 칼 헨리(Carl F. H. Henry)는 『기독교 세계관과 사회질서』(The Uneasy Conscience of Modern Fundamentalism, 1947)를 통해,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회피한 채 도피적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비판하며, 기독교는 세상 속에서 윤리적, 학문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곧 신학, 학문, 문화, 언론 영역에서 복음주의의 새로운 참여 논리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신복음주의는 성경의 무오성과 역사적 기독교 교리를 지지하면서도, 타 전통과의 대화(에큐메니컬 운동과 로마 가톨릭, 정통주의 등) 가능성을 열어두었습니다. 대표적인 기관인 풀러 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는 이러한 입장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중심이 되었으며, 이후 복음주의적 학술 연구와 선교 전략이 이곳을 중심으로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신복음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전 세계 선교에 대한 새로운 비전 제시입니다. 선교를 단지 개인 구원 차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정의, 교육, 의료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실천적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인식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방향은 이후 로잔운동에서 구체화되며, 복음주의 세계 선교의 근간이 됩니다.

신복음주의는 그 자체로도 다양한 내부 갈등과 비판을 낳았습니다. 보수적인 근본주의 진영에서는 이를 “진리를 희석하는 자유주의적 타협”으로 비난하였고,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여전히 폐쇄적 복음주의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신복음주의는 결과적으로 21세기 복음주의의 근대화를 가능케 한 사상적 기틀을 제공했으며, 동시에 오늘날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주의 운동 간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두는 접점이 되었습니다.

현재의 복음주의 신학계와 선교 전략의 기초는 상당 부분 신복음주의의 유산 위에 서 있습니다. 특히 사회참여와 복음의 통합, 신학적 정통성과 열린 대화의 조화, 세계 선교의 전략적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이 운동의 유산은 여전히 유효하며, 신학적 평가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2. 로잔운동과 세계 복음주의의 연대

로잔운동(Lausanne Movement)은 20세기 후반 복음주의 운동이 세계적 연대와 선교의 방향성을 다시금 정비하고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로잔 세계 복음화 대회(Lausanne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를 시발점으로 시작되었으며, 주도적 인물로는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존 스토트(John Stott)가 있습니다. 로잔운동은 복음주의의 글로벌 확산뿐 아니라, 복음주의 내부의 균형과 자기 성찰을 촉진한 중요한 역사적 계기입니다.

로잔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복음 전도와 사회 책임의 통합적 이해입니다.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 1974)은 "복음 선포와 사회 정의는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둘 다 복음의 본질적인 사명이다"라고 명시함으로써, 기존 복음주의가 간과했던 사회적 책임의 신학적 기초를 재확립했습니다. 이는 개혁주의 신학에서 강조하는 '하나님 나라의 전면적 회복' 개념과 깊이 상통하며, 복음의 총체적 성격을 다시 부각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운동은 단지 선교 전략의 재조정이 아니라, 세계 교회 간의 연대를 촉진한 복음주의 연합 운동이었습니다. 로잔 대회를 통해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 비서구권 교회 지도자들이 복음주의의 중심 담론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이는 복음주의 신학이 보다 다양한 문화적·지리적 맥락 속에서 발전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로잔운동은 단지 서구 복음주의의 재포지셔닝이 아니라, 복음주의의 탈서구화와 다원적 공공신학의 가능성을 제시하게 됩니다.

또한 로잔운동은 복음주의의 학문적 성숙에도 기여했습니다. 회의 참가자들과 후속 문헌들은 성경적 진리, 사회 정의, 정치 참여, 종교 간 대화 등의 주제를 신학적으로 숙고하며, 단순한 실천운동이 아니라 신학과 실천의 통합 운동이 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후 케이프타운 서약(Cape Town Commitment, 2010)과 같은 문서들은 로잔운동의 원칙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하면서, 복음주의가 세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신학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안내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존 스토트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복음의 전인적 성격'을 일관되게 강조하며, 복음주의 신학이 단지 구원 교리와 개인적 회심에만 머무르지 않고, 문화, 윤리,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쳐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로잔운동 전체의 신학적 방향을 결정지은 중요한 기초가 되었으며, 복음주의의 공공성 회복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로잔운동은 현재도 글로벌 복음주의 연대의 대표적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세계 복음주의가 분열과 도전에 직면한 가운데에서도 공동의 신학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나아가, 로잔운동은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간의 접점을 넓히는 촉매로 작용하면서, 성경 중심, 문화 참여, 공공 책임의 조화라는 복음주의 이상을 세계 교회에 제안하고 있습니다.

3. 개혁주의 수용과 복음주의의 조화와 긴장

복음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문맥 속에서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개혁주의 전통과의 관계는 중요한 신학적, 전략적 쟁점으로 부각되었습니다. 복음주의와 개혁주의는 공통적으로 성경의 권위,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구원의 필요성 등 핵심 교리를 공유하지만, 신학적 기반과 역사적 뿌리, 신앙 실천의 방향성에서 구조적 차이 또한 존재합니다. 이 장에서는 복음주의 진영이 개혁주의 신학을 어떻게 수용해 왔는지를 살펴보며, 그 안에 담긴 조화의 가능성과 긴장의 현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복음주의는 본래 “성경적 복음에 대한 열정”이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여러 교파와 전통이 연대한 흐름입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보면, 복음주의의 중심에는 웨슬리안 아르미니안주의, 루터주의, 재세례파 전통 등이 함께 존재하며, 개혁주의는 그중 하나의 큰 축으로 자리해 왔습니다. 복음주의 내부에는 칼빈주의를 전면 수용한 ‘개혁 복음주의(Reformed Evangelicals)’가 있는가 하면, 신학적으로는 전통적 칼빈주의를 따르지 않지만 복음의 열정과 성경 중심성에서는 유사한 태도를 보이는 진영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개혁주의는 복음주의의 신학적 균형과 깊이를 보완하는 원천이 되어 왔습니다.

특히 20세기 후반 이후, J.I. 패커(J. I. Packer), 도널드 카슨(D. A. Carson), 팀 켈러(Tim Keller), 존 파이퍼(John Piper) 등과 같은 신학자들이 개혁주의 신학과 복음주의적 실천을 결합하려는 시도를 통해, 두 전통 간의 의미 있는 통합 모델을 제시해 왔습니다. 이들은 교리적으로는 칼빈주의적 구원론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복음주의 특유의 열정과 선교적 비전, 문화 참여 의식을 함께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많은 복음주의 교회와 청년층 사이에 개혁주의의 교리적 정체성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이 조화 시도는 항상 순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혁주의의 언약 중심적 사고, 예정론, 전통적 예배의 강조는 때로 복음주의 내의 자유로운 스타일, 감성적 회심 중심 사상, 부흥운동 전통과 충돌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성례 이해, 예배 형식, 교회 정치에 대한 문제에서 개혁주의는 보다 제도적이고 신학적으로 구조화된 접근을 취하는 반면, 복음주의는 보다 유동적이며 실용적인 접근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런 차이로 인해 동일한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도 개혁주의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갈등과 논의가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주의는 복음주의의 뿌리를 제공한 전통 중 하나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복음주의 내에서 신학의 깊이와 균형을 제공하는 정통의 축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신앙의 진리성과 논리성, 문화적 책임의 문제를 함께 논의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 앞에서, 개혁주의는 복음주의가 감정적 열정 이상으로 신앙을 이끌어가는 지적·실천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신칼빈주의(New Calvinism)’라는 이름으로 개혁주의 신학을 재발견하고 이를 복음주의의 실천적 맥락 속에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SNS와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며, 전통적 개혁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된 복음주의 신자들에게 신학적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도 원래 개혁주의가 지닌 교회론과 성례 이해가 종종 희석되거나 축소되며 수용되는 한계도 존재합니다.

결과적으로, 복음주의와 개혁주의의 관계는 단순한 수용과 거부의 관계가 아니라 지속적인 대화와 상호 조율의 관계로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개혁주의가 지닌 정통성과 신학적 견고함은 복음주의의 실천성과 선교적 열정과 만나면서, 보다 건강한 교회 공동체와 공공신학을 이루어가는 데 필수적인 기반이 됩니다.

 

20세기 복음주의 운동은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복음을 보존하고자 했던 진실한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복음을 단지 수동적 보존이 아닌, 능동적 전달과 신학적 정립, 사회적 책임의 회복을 지향하면서 형성되었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등장한 신복음주의는 문화에 대한 도전과 복음의 순수성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을 모색하였고, 로잔운동은 복음주의의 세계적 연합을 실현하며 신앙의 공공성과 선교적 사명을 강조했습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복음주의 운동이 개혁주의 신학과의 관계 속에서 더욱 깊어졌다는 점입니다. 개혁주의의 정통성과 교리적 깊이, 복음주의의 영적 열정과 선교 비전은 서로를 보완하며, 오늘날 교회와 신학이 직면한 다양한 도전 앞에서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고 확장하는 연합의 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조화는 간단한 결합이 아니라, 지속적인 대화와 경청, 신학적 자기성찰을 통해 이루어지는 긴 여정입니다.

21세기의 복음주의는 더 이상 서구 중심이 아니라 **글로벌 복음주의(Global Evangelicalism)**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복음주의 교회들이 성경의 권위와 선교 열정 안에서 성장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도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관심과 수용이 함께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결국 복음주의의 정체성은 복음 그 자체에 있으며, 개혁주의 신학은 그 복음을 가장 견고하게 설명하고 지켜주는 역사적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 두 흐름의 상호 보완 속에서, 신실하고도 선교적인 복음 공동체로 다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개혁주의 신학의 깊이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또 개혁주의는 복음주의의 실천성과 선교적 역동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보다 성경적인 교회, 보다 복음적인 시대의 증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1) George Marsden, Reforming Fundamentalism: Fuller Seminary and the New Evangelicalism, Eerdmans, 1987.

2) Harold J. Ockenga, The New Evangelicalism, Christianity Today, 1957.

3) Carl F. H. Henry, The Uneasy Conscience of Modern Fundamentalism, Eerdmans, 1947.

4) David Wells, No Place for Truth: Or Whatever Happened to Evangelical Theology?, Eerdmans, 1993.

5) John Stott, Issues Facing Christians Today, Zondervan, 2006.

6) Lausanne Movement, The Lausanne Covenant, 1974.

7) Samuel Escobar, The New Global Mission: The Gospel from Everywhere to Everyone, IVP, 2003.

8) Christopher J. H. Wright, The Mission of God, IVP Academic, 2006.

9) J. I. Packer, Evangelism and the Sovereignty of God, IVP, 1961.

10) D. A. Carson, The Gagging of God: Christianity Confronts Pluralism, Zondervan, 1996.

11) Timothy Keller, Center Church: Doing Balanced, Gospel-Centered Ministry in Your City, Zondervan, 2012.

12) John Piper, Desiring God: Meditations of a Christian Hedonist, Multnomah, 1986.

13) Kevin J.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A Canonical-Linguistic Approach to Christian Theolog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5.

14) Mark A. Noll, The Rise of Evangelicalism: The Age of Edwards, Whitefield and the Wesleys, IVP Academic, 2003.

15) Alister E. McGrath, Evangelicalism and the Future of Christianity, IVP,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