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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불트만의 신학 (하이데거, 실존신학, 비신화화) 20세기 초, 신학은 해체와 재구성의 기로에 서 있었으며, 계몽주의 이후 전통적 기독교 신앙의 근거였던 성경과 교리는 과학적 세계관과 역사비평학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자연과학의 발전, 실증주의, 그리고 역사비판적 방법론은 초자연과 기적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켰고, 이는 신학이 무엇을 말할 수 있으며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게 했습니다.이러한 상황에서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은 ‘비신화화(demythologisierung)’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신약성서의 신화를 실존적 언어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전개하였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과거의 신화적 언어와 세계관에 갇혀 있다면 현대인에게 의미를 줄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 신앙을 보존하기 .. 2025. 6. 18.
20세기 복음주의 운동(신복음주의, 로잔운동, 개혁주의 수용) 20세기 초는 교회사적으로 거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이 전통적 신앙을 도전하고 있었고, 근본주의는 이에 맞서면서도 문화와 단절된 반작용적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양극단 속에서, 복음주의는 성경 중심성, 십자가의 복음, 개인적 회심, 선교와 사회책임의 통합을 지향하는 중도 노선을 선택하며 등장하게 됩니다.복음주의 운동은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에 대항하며 정통 신앙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와의 대화, 사회참여, 신학적 개방성을 동시에 모색하였습니다. 이러한 균형적이고 통합적인 시도는 바로 신복음주의(New Evangelicalism)의 이름 아래 태동하게 되며, 이후 로잔운동(Lausanne Movement)과 같은 세계 복음주의의 연합 흐름으로 확장됩니다.. 2025. 6. 17.
네덜란드 신칼빈주의의 전개(기독교 정치 참여, 반혁명주의, 세계관 충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유럽은 급격한 사회 변화와 세속화 물결에 휩싸였습니다. 산업혁명과 자유주의, 사회주의, 과학주의의 확산은 신앙과 교회를 구시대의 잔재로 밀어붙였고, 공적 영역에서 기독교 신앙은 점차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맞서 네덜란드의 개혁신학자들이 제시한 대안이 바로 신칼빈주의입니다. 이 운동은 종교개혁의 중심 사상이었던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확장하여, 인간의 삶 전 영역에 기독교 신앙이 미치는 영향을 회복하려는 시도였습니다.신칼빈주의는 단지 교회 개혁이 아니라, 학문, 예술, 정치, 사회 전반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회복하고자 한 문화적 개혁 운동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는 이 운동의 중심 인물로, 이들은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한 실천적 신앙의 중요성을.. 2025. 6. 17.
근대 개혁주의 신학의 계승자들(카이퍼, 바빙크, 문화 변혁)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교회가 신앙과 문화, 공공영역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을 모색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이 세상 모든 영역 위에 그리스도의 주권이 미친다”고 외쳤고,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교리적 정통성과 현대적 학문의 긴장을 함께 담아냈습니다. 이 두 신학자는 ‘개혁주의 전통이 어떻게 현대 사회와 지성의 도전에 응답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신학적으로 풀어냈습니다. 이 강의에서는 카이퍼와 바빙크를 대표 사상가로 삼고, 그들의 사상과 유산이 개혁주의 신학의 현대적 발전과 문화 변혁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 살펴보겠습니다.1. 아브라함 카이퍼와 공적 신학의 확장아브라함 카이퍼는 19세기 네덜란드 개혁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로.. 2025. 6. 17.
해방신학과 급진적 신학의 도전(해방신학, 급진적 신학, 사회 참여) 20세기 중후반, 라틴아메리카, 미국 흑인 커뮤니티,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복음이 가난한 이들, 억압받는 민중과 분리되어 있다는 깊은 자각이 형성되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적 구조 비판, 사회적 실천에 뿌리 둔 신학 담론들이 등장하며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이 형성되었습니다. 구티에레스에 따르면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은 신학의 출발점이 되어야 했고, 이를 통해 교회는 '하늘나라의 구원'만이 아닌 '이 땅에서의 정의'로 향해 움직였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흑인 해방 신학(제임스 H. Cone)은 인종차별 현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흑인들의 구속자이며, 복음은 그 억압 구조를 부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 2025. 6. 17.
바르트와 신정통주의 (신정통주의, 계시 중심 신학, 변증적 신학) 20세기 초는 신학적으로 암흑의 시기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19세기 후반의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 이성과 경험을 과도하게 신뢰한 나머지, 성경과 하나님의 초월성을 급격히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기독교는 도덕적 교훈으로 축소되었고, 복음은 인간 내면의 자각이나 도덕적 진보로 대체되었습니다. 전통적 교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신화’로 여겨졌으며,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탈신비화의 이름으로 해체되어 갔습니다. 그런 자유주의 신학에 치명타를 가한 사건이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전쟁은 인간 이성과 문명의 진보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렸습니다. 인간의 윤리적 개선 가능성에 대한 낙관은 참혹한 현실 앞에서 무력해졌습니다. 이 위기 속에서 등장한 신학이 바로 **신정통주의(Neo-Orthodoxy)*.. 2025. 6. 16.